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정직 공무원/역사 (문단 편집) == 참여정부 == [[참여정부]] -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5일 3가지 중대한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 교정국이 교정본부로 승격 되었고, 둘째 4부제가 실시되었으며, 셋째 행형법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로 전면개정 되었다. 교정계 변화에 대한 설명에 앞서 임용령 개정에 대한 설명과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2005년 임용령 개정으로 직군·직렬별로 다양하게 나눠져 있던 2~4급 공무원 직급을 통합한다. 이에 2급 교정이사관은 이사관, 3급 교정부이사관은 부이사관, 4급 교정감·교회감·분류감·의무기정 등은 서기관과 기술서기관으로 통합 된다.[* 공무원임용령 개정 제18842호, 2005.5.26.] 다음해에는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시행되는데, 이에 따르면 기존의 1~3급 고위 공무원들은 계급이 폐지되고 가~마급의 직무등급이 부여 된다. 이때 대형교도소장은 고위공무원 직무등급 '마'급으로 조정 되었다. 2007년 11월 30일, 오랫동안 교정계의 숙원사업이었던 '''교정국이 교정본부로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교정본부장의 직급이 고위 공무원단 '다'등급에서 '가'등급으로 격상 되었으며, 교정본부장 보좌기관으로 교정정책관[* 교정기획과, 작업훈련과, 교육교화과, 사회복귀지원과, 복지지원과 담당]과 보안정책관[* 보안관리과, 보안경비과, 분류처우과, 보건의료과 담당]을 만들고, 사회복귀지원과, 분류처우과, 보건의료과 등 3과를 신설한다. 이에 종전 1국 1심의관 6개과에서 1본부 2정책관 9개과로 확장되었으며, 각과 명칭은 국민들이 알기 쉽게 변경한다는 의도에 따라 전년도 변경 되어. ~~과 명칭은 다음 정권 때 원위치 된다~~[* 국민들이 알아보기 싶게 한다며 풀어서 설명하겠다는 의도는 좋은데 필연적으로 과 이름이 길어졌다. 그리고 다음 정권 때 참여 정권 때 한일을 모두 원위치 시킨다는 정책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 상황에서 슬쩍 바뀐 과명도 있어 더 헷갈리게 만든다.] 교정기획과(구 교정과), 작업훈련과(구 작업지도과), 교육교화과(구 교화과), 사회복귀지원과(신설), 복지지원과(관리과), 보안관리과(보안제1과), 보안경비과(보안제2과), 분류처우과(신설), 보건의료과(신설)가 되었다. 이로 인해 본부 직원은 65명에서 95명으로 대폭 증가 된다.(법무부 총무과, 정책홍보관리실, 감사담당관실 등 타과에서 근무하는 교도관 제외) 교정연수부는 교수 요원으로 교회관·분류관 각 1명이 추가 되어 정원 30명이 되었다.(별정직 및 기능직 제외. 법무연수원 타과에서 근무하는 교정직원도 제외) 이사관인 교정연수부장은 고위공무원단 ‘마’급으로 직무등급을 받았고, 그 아래 과장인 서기관과 교정관 각 1명이 있으며 ‘교수부’를 구성하는 교정관 4명, 교회관 1명, 분류관 1명 등 6명이 교수 요원이었다. 과원들로는 교감 10명, 교위 1명, 교사 10명이 있었다. 교정연수부장은 2007년 개방형 직위가 되었다가 다시 공모직위로 변경된다. 신규 9급의 경우 20일 교육 과정으로 매년 신규직원 200명가량 교육 시켰으나, 4부제 실시를 위해 대폭 늘어 2005년 609명, 2006년 749명, 2007년 1070명에게 교육실시 하였다.[* 교육생들이 너무 많아 일선기관에 선배명 하였다가 순차적으로 후교육 하는 방식으로 실시 되었다. ~~“경례도 할 줄 모르다니, 자네 연수원도 안 갔다 왔나?”, “연수원 안 갔다 왔는데요!?”~~ 교육차수는 06년 특채는 5차례, 06년 공채는 2차례에 걸쳐 200명씩 끊어서 실시하였다.] 7급 공채는 15주~20주 교육에 격년제로 모집하여 70명 정도씩 뽑다가 2007년에는 97명을 교육 시켰다. 7급 교회·분류직은 20일 교육에 20명 정도 뽑다가 2007년에만 30일간 69명을 교육 한다. 지방교정청장급은 부이사관에서 이사관으로 격상 된다(2006년). 과 명칭도 변경되어 총무과, 보안관리과(구 보안과), 작업훈련과(구 작업과), 교육교화과(구 교무과), 보건분류과(구 의료분류과)가 되었다. 2006년 7월 1일에는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서울지방청장은 직무등급 '다'급으로, 대구·대전·광주지방청장은 '라'급이 된다. 일선기관의 과명 역시 바뀌어 서무과는 총무과, 보안과는 보안관리과, 작업과는 작업훈련과, 용도과는 복지지원과, 교무과는 교육교화과, 출정과는 출정사무과, 명적과는 수용기록과, 접견영치과는 민원사무과, 의무과는 보건의료과로 명칭 변경하였으며 분류심사과만 그대로 유지하였다. ~~어째 무조건 4글자로 만들려는 것 같다만~~ 그리고 전국 각 구치지소는 지소로 명칭 변경 된다. 교정시설은 30개 교도소, 10개 구치소, 2개 보호감호소, 구치지소 5개 등 47개 기관으로 시작하여 충주구치소[* 2003년 12월 30일 신설, 2004년 12월 3일 개청. 직원정원 160명, 수용정원 180명. 특이한 구조였는데 4층의 오각형 건물이었다.], 통영구치소[* 2003년 12월 30일 신설, 2004년 6월 21일 개청. 직원 정원 145명, 수용저원 520명.], [[포항교도소]]가 신설[* 2005년 8월 12일 신설, 2006년 11월 2일 개청. 직원정원 202명, 수용정원 1,350명. 경교대의 연차적인 폐지를 대비한 시범 시설로 국내최초로 첨단 감시체계가 적용된 시설이었다.]되었으며, 사회보호법 폐지로 피보호감호자가 급격히 줄어 청송제1보호감호소는 청송직훈[* 2004년 12월 31일]으로, 청송제2보호감호소는 청송보호감호소[* 2004년 12월 31일]를 거쳐 청송제3교[* 2005년 8월 12일]로 변경된다. 또한 소년수형자 감소로 김천소년교도소는 김천교도소[* 2004년 12월 31일]가 되었으며, 한센병 환자의 감소로 소록도지소가 폐지된다.[* 2005년 8월 12일. 남은 한센병 환자는 순천교도소로 수용된다.] 노후시설 이전으로 청주여교[* 2003년 10월 27일 이전. 직원정원 141명, 수용정원 300명. 1989년 청주보안감호소 건물을 인수하여 사용하다 시설 노후로 이전 한 것이다.], [[순천교도소]][* 2004년 7월 9일 이전. 직원정원 266명, 수용정원 1600명.]가 있다. 이에 각 청별 소속기관은 다음과 같다. ||명칭||관할기관|| ||서울지방교정청(13개)||서울(구), 안양, 수원(구), 성동(구), 영등포(구), 여주, 의정부, 영등포, 춘천, 원주, 강릉, 평택지소|| ||대구지방교정청(16개)||대구, 부산(구), 청송, 부산, 포항, 진주, 대구(구), 청송직훈, 안동, 청송2교, 김천, 청송3교, 울산(구), 경주, 통영(구)|| ||대전지방교정청(11개)||대전, 천안(개방), 청주, 천안(소), 청주(여), 공주, 충주(구), 홍성, 논산지소, 천안지소, 서산지소|| ||광주지방교정청(7개)||광주, 전주, 순천, 목포, 군산, 제주, 장흥|| 시설규모가 가장 큰 기관은 2007년 기준으로 정원 2,300명인 서울구치소이며, 그 다음으로 대전 2000명, 안양 1,800명, 대구 1800명 순이었다. 강릉·경주·홍성 교도소가 330명으로 가장 작았고 지소들은 200명 가량이며, 최저인원인 소록도 지소는 60명이었으나 폐지되었다. 그리고 만성적인 계호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도관들의 근무환경 개선 및 사기진작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참여정부 임기 내에 부족 교정공무원을 증원하고 처우를 개선하라"고 지시 한다. 이에따라 2006년부터는 4부제 실시를 위해 직원 정원을 대폭 증원하였다. 경교대 축소·폐지를 위한 인력 증원이 절실 하였지만, 이건 전자경비시스템 설치로 대체 되었다. ~~제설작업과 제초작업, 기동타격대도 전자경비시스템이 대체해주나요?~~ 이러한 직원 증원으로 참여정부 시절 교정공무원은 12,388명으로 시작하여 정권 말에는 14,162명으로 대폭 증원되었고, 이후 큰 변화 없이 2020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래의 총원 및 직급별 인원에서 교정본부 95명, 교정연수부 30명 제외한다. 다만 교정본부·교정연수부 인원은 고공단 만 기재한다. * 고위공무원 '가'등급 교정국장 * 고위공무원 '다'등급 서울지방교정청장 * 고위공무원 '라'등급 ~~교정심의관~~ 법무부 보안정책단장[* 2007년 12월 개방형직위로 조정되었다.]·교정정책단장, 대구·대전·광주지방교정청장, * 고위공무원 '마'등급 서울·영등포·성동·부산·수원·인천구치소장, 대구·대전·청송·안양·광주·천안개방교도소장[* 단 천안개방교도소장과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은 2007년 개방형직위로 변경되었다가, 그해 12월 제외되었다. 대신 대전지방청장과 교정연수부장이 공모직위로 조정 된다. 개방형직위는 외부 모집, 공모직위는 내부 모집이라는 것이 다르다.], 교정연수부장. * 교정직 ~~이사관 4명~~[* 2006년 고공단 설치로 이사관은 없어진다.], 부이사관 7명[* 19명이 있었으나 고위공무원단 설치로 이중 12명이 고공단으로 바뀌어 부이사관은 7명만 남았다.], 서기관 75명, 교정관 190명, 교감 1,081명, 교위 1,269명, 교사 4,844명, 교도 5,136명. * 교회직 ~~교회감 7명~~[* 2005년 서기관 단일 직급으로 통합됨], 교회관 36명, 교회사 142명, 교회사보 121명. * 분류직 분류관 21명, 분류사 100명, 분류사보 122명. * 의무직 기술서기관 69명, 의무사무관 22명, 약무사무관 3명, 의료기술주사 10명, 의료기술주사보 4명, 간호주사 14명, 간호주사보 24명, 간호서기 31명. * 기술직·별정직·기능직 공업·시설사무관 3명, 전산사무관 1명[* 2005년 신설되 서울지방교정청 소속. 이로서 서울청 정원은 31명. 타청은 28명으로 변동 없음.], 공업주사 4명, ~~섬유주사 1명~~[* 기록상 제1공화국시대에 대전교도소 섬유기좌라는 이름으로 존재 했으며,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전체 정원 1명의 자리였는데 2007년 없어졌다.], ~~화공주사 1명[* 5공화국 시대에 '화공기사' 직위로 1명이 처음 등장 하였는데 2007년 폐지되었다.]~~, 공업·통신주사 7명, 농업주사 2명, 식품위생주사 11명, 시설주사 27명, 공업주사보 7명, ~~전기주사보 5명~~[* 2007년 폐지], 농업주사보 2명, 식품위생주사보 14명, 공업서기 2명, 농업서기 1명, 식품위생서기 10명, 시설서기 7명, 농업서기보 4명, 식품위생서기보 12명[* 2005년 신설. 식품영양학과 졸업자들을 면접만으로 선발 하였다.], 시설서기보 3명, 별정직 107명, 기능직 586명. 변호사 특채가 처음 있었는데, 2008년에는 교정본부 교정기획과와 보안경비과에 각 1명, 2009년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자 3명은 신규 채용하여 교정본부에 2명, 서울지방청에 1명 배치하였고, 이들로 수용자의 고소고발 대응 및 교정관계 법령 개정 업무를 담당하게 한다. 직급은 이 당시의 경우 5급 교정관으로 채용 하였다. 승진제도가 변경되어 5급 승진시험은 1차 헌법, 행정법으로 치르고 2차로 교정학, 형사소송법을 보게 되었다. 6, 7급 승진 시험은 교정학, 형소법, 헌법이며 8급 승진 시험은 사회, 교정학이었으나 2005년 형소법과 교정학으로 변경 된다.[* 이때 9급 채용시험에서도 사회가 빠지고 형소법으로변경 된다. 10년쯤 후 일이지만 모든 공무원시험에서 직무 관련 과목 대신 고교 취업률을 높인답시고 사회, 수학등으로 공무원 채용 시험을 보게 하였다. 이시기에 교정계 역시 법과목 대신 사회, 수학을 시험 보고 들어온 사람이 대부분이 되는데 이들은 교정학, 형소법을 몰라 업무에 필수적인 부분에 대해 무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목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승진시험 자체를 아예 포기하게 된다. 이런 정신 나간 시험 제도는 정권이 바뀌면서 원위치 되었다.] 수용정원은 혼거실 1인당 기준 면적을 평(3.3㎡)당 2명을 기준으로 2002년 58,440명이었으나 인권보장을 위해 0.75평(2.48㎡)당 1명으로 변경하여 2003년 기준 수용정원이 44,350명으로 무려 24%나 줄었다. 이 때문에 수용율이 129.2%로 올라가 버린다. 이후 계속되는 개청과 시설 증설로 수용정원을 47,390명으로 늘렸으나 1인당 수용 면적을 2.58㎡ 당 1명으로 상향하여 수용 정원이 2007년 43,100명으로 확 줄어 들었다. 서울구치소의 예를 들자면 최초 정원 3,050명이었으나 2003년 2,500명 2007년에는 2,300명으로 줄어 들게 된다. 수용인원은 2003년 1일평균 5만8,945명이었으며, 불구속 재판 확대로 미결수가 대폭 줄었으며, 모범수형자의 가석방 확대로 기결도 줄여 2007년 4만6,313명으로 극적으로 줄였다.[* 반면 이후 보수정권에서는 구속재판 확대와 법정 최고형을 대폭 늘리고 성범죄자에 대한 가석방을 원천봉쇄 하여 수용인원이 대폭 늘어 난다. ~~정책상 교도관 증원은 당연히 없고~~ 다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 불구속 재판 원칙으로 수용인원히 확 줄어 시설 운영에 숨통이 트인다.] 반면에 교도관을 대폭 늘려 2007년에는 교도관 1인당 수용인원을 3.2명 까지 줄여 거의 선진국 수준에 근접 하였다.(일본 4.3명, 미국 3.0명) 총인구 대비로 보면 참여정부 초기 0.123%에서 시작하여 2007년에는 무려 46년만에 0.1% 이하로 떨어져 0.095%까지 감소한다. 당시 정권 차원에서 교도관 처우 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월급이 매년 인상 되었으며 특히 2006년에는 계호업무수당이 9만원에서 17만원으로 대폭 인상 되었고, 기존에 제외되었던 교회직·분류직·직훈교사·보건의료직 공무원들에게도 지급되었다. 정액급식비는 8만원에서 13만원으로 인상 된다. 봉급은 9급 3호봉이 954,500원, 7급 3호봉 1,220,400원 이였으나 계호수당 등 각종 수당에 3부제 기준[* 4부제 기관은 근무시간이 줄어 시간외 수당도 줄었다. 특히 4부제 3안 실시 직후 어느 달에 당시 전국의 제 4부 직원들이 일제히 시간외 수당을 17만원 받아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해당 월에 하루라도 휴가 낸 사람은 시간외 수당 12만원……. 이건 워낙 극단적인 경우였지만 4부제 기관은 3부제 기관보다 보통 몇 십만 원 정도 적은 액수를 받았다.] 60만 원 정도의 시간외 수당을 합쳐 약 180만 원 정도 받았다. 월 2회에 한하여 주 5일제가 시행되었다가(2004년 7월), 전면 시행으로 바뀐다(2005년 7월). 이후 교정시설은 토요일은 운동과 접견을 제외하면 업무를 보지 않고 쉬게 된다. 군대에 갈 청년층이 부족해짐에 따라 경교대가 슬슬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대형교도소에서는 수백 명, 아무리 작은 교도소도 7~80명씩 있던 경교대가 기관에 따라서는 반가량으로 줄어 접견, 1호차(소장차)운전, 외부병원, 사무실 지원근무, 구외계호, 출정, 호송 등의 임무에서 점점 해제가 되었다. 심지어 일부 기관은 전자경비시스템이 완료되어 감시대마저 경교대를 철수 시킨다. 이에 경교대는 정문, 외부정문, 순찰, 기동타격대 임무만 수행 하였다.(대부분의 교도소는 감시대 근무를 계속 함) 관련하여 경교대 폐지를 대비하여 교정시설에 전자경비시스템을 설치 운영하였다. 2006년 개청준비 중인 포함교도소가 시범 운영기관으로 최초로 도입 되었으며 예산절감 등 효과가 탁월하여 이후 전국적으로 설치된다. 외부 경비는 CCTV와 이중 삼중으로 중복된 각종 감시센서를 설치하여 이를 한두명이 근무하는 중앙통제실에서 전부 통제 가능하도록 하였다. 내부적으로는 주요 통용문을 자동화 하여 출입카드로 출입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밖으로는 감시대 근무 인력, 안으로는 통용문 근무 인력을 완전히 감축하게 되었다. 참여정부 시기 가장 충격적인 일은 '''김동민 교감의 순직 사건'''일 것이다. 너무나 사회적 파장이 커서 [[추적 60분]]으로 방영 되었고,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퇴임하며 재임시 가장 가슴 아팠던 일로 김동민 교감의 순직을 꼽았을 정도이다. 6.25 전쟁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형무관들이 북한군이나 공비와 싸우다가 순직하였지만, 수용자에게 맞아 죽은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이다. ~~수용자에게 인질로 잡히거나 칼로 난자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대한민국 수립 후 교정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지강헌]] 탈주 사건과 김동민 교감 순직 사건이다. 1988년 지강헌 사건으로 사람 잡는 갑을제 근무 시스템이 널리 알려져 3부제로 바뀌게 되었고, 김동민 교감 사망 사건으로 부족인력 충원 방안이 추진되어 향후 3년간 3,400명을 목표로 충원 받아 4부제 시행의 계기가 되었다. 충주, 통영, 포항, 밀양, 정읍 교도소 신설 사업이 탄력 받았으며 노후 교정시설 개축 및 신축이 진행 되었다. 그외 순직교정공무원 국립묘지 안장, 교정시설의 경비등급화, 열악한 근무환경 및 수용환경 개선이 되었다. 작게 보면 현재도 모든 교도관 지갑에 꽂혀 있는 'CO MEMBERSHIP CARD'가 이 사건 직후 직원 복지를 위한 설립된 교정공무원 상호부조회에서 추진한 교정공무원 전용 복지신용카드이다. 그리고 사건 이후인 '''2006년에 대망의 4부제가 실시되었다.''' 원래 시범 실시 할 때[* 2006년 9월4일 부터 12월 17일까지 15주간 3개 안을 차례로 시범 실시하였다.] 4부제는 3개 안이 있었다. 1안은 4일 주기로 야근-비번-윤번-주간방식이며(윤번일에는 1/2만 출근한다), 2안은 경찰등 대부분의 교대제 기관에서 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3등분 하여 20일 주기로 근무하는 4부3교대 방식이다. 3안은 '유한킴벌리' 회사에서 하는 방식 이라는 건데 8일 주기로 야근-비번-야근-비번-휴무-윤번-윤번-주간-주간으로 근무 하는 것이다. 원래 3부제에서 주말이 끼어 비번-휴무가 될 때를 '쌍피 터진다~!'라고 하는데, 4부제 3안에 의하면 '쓰리피'가 터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시범기관 직원들은 1안은 비번날도 아침 9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하는 사실상 '조근'이라 8일중 쉬는 날이 1일밖에 없다며 비선호 하고 ~~막상 시행하니 그 1일 휴무도 없어질지는 이때는 몰랐다~~, 2안은 오밤중에 퇴근해야 해서 회식할 시간이 없으니 안 되고, 3안이 쓰리피가 터지기 때문에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아 시행되게 된다. 막상 시행하니 윤번 휴무일을 조정하여 한 주는 윤번출근을 연속 2번 하고, 그 다음주는 포피를 타게 되는 식으로 꿀 빨게 된다. 다만 기존의 3부제는 선후번 나뉘어 5시간~5시간30분 정도씩 잤는데, 4부제 3안에서는 취침시간이 없어지고 2시간 대기시간만 존재하며, 근무도 고정근무가 아니라 전 사동을 풀순찰을 도는 방식이었다. 침실에 침구류가 전부 치워지고 의자가 설치되어 앉아서 조는 방식을 취했는데, 2일째 야근하는 날에는 너무 피곤하여 순찰을 도는 동안 걸어 다니며 졸았다. 피로도는 극심했지만 대신 쓰리피, 포피를 탈 수 있어 지난 수십년간 못 갔던(...) 고향집도 방문하며 불효자 소리를 면하고, 3~4일짜리 여행도 다니며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사실상 월 2회씩 3~4일짜리 휴가가 생기는 것과 다름없어 전국의 4부제 기관의 연가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4부제는 3년간 3,400명을 증원하는 것을 목표로 3년에 걸쳐 나눠서 시행하기로 하였다. 이에 시행 첫해인 2006년에 특채자 1,003명을 뽑아 전국 교도소의 1/3이 2006년 8월에 4부제 시범실시를 하게 된다. 주로 힘들기로 유명한 교정시설인 안양·춘천·원주·대구·청송·부산·진주·안동·대전·공주·광주·전주·순천·목포·부산(구)등 15개소였다. 이들은 시범 실시 후 현장근무자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4부제 3안을 결정하였고, 2007년 2월 2일부터 시행한다. 2차 시행을 위해 2007년에는 특채 400명을 뽑아 8월 27일부터 1/3의 교도소에서 4부제를 실시하게 된다.[* 이때 강릉교도소는 여자 2명 모집에 105명이 응시하여 경쟁률 52.5:1을 기록하였다. 이중 3명을 뽑아 면접을 실시하였는데 이들의 평균 합격점수가 무려 102점에 달해 경쟁과열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즉, 시험보고 100점 맞아도 떨어지고 여기서 가산점이 더 있어야 합격한다는 뜻.] 의정부·영등포·강릉·평택지소·마산·포항·김천·청송3교·경주·청주·천안소년·청주여자·홍성·천안·논산·서산·제주·[[장흥교도소]] 등 18개 기관이 2차 기관에 해당한다. 그런데 막상 4부제를 하니 간부들 사이에 인수인계가 안 된다는 불만이 컸다. 매 8일 주기마다 2~4일을 연달아 쉬는데, 그사이에 변경된 사항이 많아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장 직원들에게는 이틀 연속 야근의 피로감이 큰 부담이었다. 그러자 시범실시 기관 전직원 투표로 결정한 4부제 3안을, 전국 기관장끼리만 재투표 하여(반대 1표) 4부제 1안으로 강제로 바꾸어 버려 2008년 3월 23일 부터 시행해 버린다. 직원들 사이에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지만 야근 중 대기 시간을 3시간으로 늘려주는 것으로 무마 시도를 하였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다. 이때는 공무원 증가 억제가 국정목표였기 때문에 나머지 1/3의 교도소의 4부제 인원을 뽑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1/3의 교도소들은 10년 가까이 지나 박근혜 정부시기까지도 주~욱 3부제를 하게 된다. 또한 3년간 3,400명을 증원하겠다는 계획도 나가리가 되어 4부제 시행 기관에서는 극심한 직원 부족에 시달린다. 이때 4부제를 못한 1/3의 교도소는 비교적 편하다고 하는 S2 교도소들과 규모가 커서 직원 충원이 대규모로 필요한 구치소들로, 서울(구)·수원(구)·성동(구), 인천(구), 영등포(구), 여주, 화성직훈, 대구(구), 청송직훈, 청송2교, 울산(구), 통영(구), 천안개방, 충주(구), 군산, 영월, 해남, 밀양(구)였다. '''2007년 12월 21일 행형법이 10차 개정으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이하 형집행법)로 전면 개정'''되어 수용자 처우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기존의 일제강점기 부터 내려오던 각종 제도나 용어가 이때 싹 뜯어 고쳐졌다. 현대의 일본 역시 놀라울 정도로 이때까지의 행형법과 동일한 용어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을 한국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교정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시설 부족 및 노후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하였는데, 덕분에 교도관 관련 시설 및 처우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물론.[*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 쓴 옥중수기인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를 보면, 책에서 수차례 당시 대통령과 강금실 장관을 언급하며 교도소 시설이 크게 개선 되었다고 칭찬한다. 해당 기자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아이러니한 부분] 정보통신을 중시하던 정권답게 전자경비시스템이 도입 되었다. 교도소 곳곳에 CCTV가 설치되고 주벽에는 감시센서가 달려 더 이상 경교대가 감시대 근무를 안서도 되었다. 문들이 대부분 자동화 되어 이전처럼 경교대가 주요 통용문과 정문에서 직접 열어줄 필요가 없었다. 대신 중앙통제실이 설치되어 통제실 근무자가 모든 시설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전자경비시스템 사업은 예산 문제로 점진적으로 도입 되어 국민의 정부 시절 여주 교도소처럼 신축과 동시에 완성 되어 있는 곳도 있었고, 이명박 정부 시대에야 간신히 첫 삽을 뜨는 곳도 있었다. 통합교정정보시스템인 보라미 시스템이 도입되어(2003년 11월)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TRS도 도입 되었는데(2006년 7월), 무전기와 스마트 폰의 장점은 모은 TRS는 순식간에 무전기를 대체하게 된다. 그외 각종 전자시스템이 도입 되는데 잦은 고장과 영세 개발업체의 부도로 [[흑역사]]가 된다. ~~장부상으로는 남아 있어 담당 직원을 괴롭힐 뿐~~ 그동안 교정시설 내 직원식당 취사업무는 여성수용자들이 전담 하였는데, 출소 후 자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수용자들의 작업기피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2003년 시범 실시 이후 차츰 민간조리원들로 교체 된다(* 일선에서는 조리원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1년 내내 밥만 하던 여성수용자들에게 피부미용, 네일아트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직업 훈련을 시킬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백명의 지역 주민들을 취업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win-win 전략이었다. 사건사고로 피보호감호자 집단불식 사건이 2001년 9월부터 무려 7회에 걸쳐 있었다. 이들은 처우 개선과 가출소 심사기준 완화를 요구하였는데 실제로 2003년에 1,115명, 2004년에 1,052명이 가출소되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적으로 폐지 여론이 워낙 강하여 2005년 6월 29일에는 아예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어 보호감호자들이 몇 십명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후에도 3회 더 집단 불식 하였지만 남은 인원이 워낙 적었고, 사회적 비난으로 인해 2006년 12월 불식을 마지막으로 종료 되었다. 2004년 7월 12일 '''대전교도소 김동민 교감 순직 사건'''이 있다. 교도관이 수형자에게 맞아 죽은 것은 해방 이 후 처음이며(일제 시대 때는 종종 있었다.), 이 사건은 4부제 시행과 이어지는 등 워낙 중대한 사건이여서 별도 항목에 자세히 후술한다. 2005년 4월, 영등포 교도소의 김00(43세)이 여직원 성폭행 시도를 하였다. 김씨는 강간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가석방 기간에 다시 살인미수로 무기 징역을 받았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용접 훈련을 받던 중 담당 훈련교사에게 "치과진료를 받고 오겠다"고 거짓말한 뒤 화장실에 숨는다. 50여분 뒤 티셔츠로 얼굴을 가린 채 화장실을 나온 김씨는 수형자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마치고 뒷정리 중인 훈련교사 A씨(30.여)씨에게 달려들어 성폭행을 시도하고 저항하는 A씨의 목을 조르던 중 교도소 교사에게 들켜 붙잡혔다. 처음부터 성폭행 후 살해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에는 조용 하였지만 무기징역 받은 상태에서 사상 처음으로 다시 무기 징역을 받아 유명해 졌다. 이른바 ‘쌍무기’.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136060|무기수에게 또 무기형 선고…첫 사례]](연합뉴스). 정신적 충격을 받은 해당 직훈교사는 휴직 후 복직하며 수형자를 만나지 않는 일에 배치 시켜 달라고 소송을 걸었으나... 교도소에 그런 업무는 없다는 이유로 패소하였다. 애도... 2005년 4월 7일에는 청송보호감호소 수용중이던 이○○(강도, 징역 3년, 보호감호 7년)이 경북 안동시 S병원에 치질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교도관이 졸고 있는 사이에 잠바를 훔쳐 입고 도주하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293084|청송교도소 탈주범 서울서 잠적…입원중 교도관 조는 사이 도주]](동아일보) 서울에서만 230여건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제보가 잇따랐지만 모두 오인신고로 판명 났다. 해를 넘기며 시민의 ~~오인~~제보 마져 끊지자 '해외 밀항설', '사망설'이 무성 하였다. 신창원 등과 달리 도주 중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중국집에서 성실하게 설거지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때문에 수사당국에서 '숨은 쉬어야 잡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도주 19월째 턱 부상으로 병원에 갔다가 자수(?) 하여 체포 되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68534.html|이낙성 검거의 재구성…탈주부터 검거까지]](한겨레). 도주기간 19개월은 1997년 신창원의 2년 6개월에 이어 역대 2번째로 긴 기간이었다. 2005년 7월 11일. 전주교도소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수용중이던 최○○이 흰색 티셔츠와 제작한 바지를 입고 직원으로 가장하여 무려 ‘’‘정문’‘’을 통과하여 도주 하였다. 도주 이틀뒤 체포 되기는 하였지만,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5&aid=0000049153|전주교도소 탈옥수 최병국, 대전서 검거]](SBS) 정문을 걸어서 통과하였다는 엄청난 임팩트에 전국의 기관이 뒤집어 졌다. 사복과 근무복의 구내 반입 및 방치를 금지하였으며, 수용자를 이용한 간부이발소, 다리미실, 구두닦기가 폐지 되었다. 정문 통과시에는 공무원증을 반드시 패용하도록 하였으며, 정문근무 직원의 허가 없이 경비교도가 임의로 개문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안양교도소의 겨우 정문안쪽에 놀이동산급의 길고 긴 난간을 만들어 정문 통과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하였다. 2005년 11월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직후 구치감으로 이동하던 중 교도관 3명을 밀치고 법원 담장을 넘어 달아난 민○○이 11시간 만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서울동부구치소(구.성동구치소) 출정과장이 직위해제를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